집에 혼자 있어서 아침에 남긴 반찬과 밥을 대충 챙겨 먹었다. 다행히 햄 반찬이 남아있었다.
오직 기계적으로 배를 채우려 젓가락으로 밥을 햄으로 싸서 입에 집어넣는 중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햄이 아니라 풀 반찬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먹고 있었을까?
아마 풀 반찬 한 가지와만 밥을 먹어야 한다면, 나는 냉장고를 열어 다른 반찬을 찾아보거나 적어도 계란 후라이라도 해서 같이 곁들여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 아무런 생각없이 식탁에 올라와 있는 반찬과 밥을 먹는 이런 행동양식은 오직 고기 반찬에서만 관찰될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주관적으로 스스로가 초록 풀 반찬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파문을 던졌다.
나는 고기도 좋아하는데, 풀도 좋아함. 근데 고기는 고기 하나만 있어도 밥을 먹을 수 있을만큼 좋아하는데, 풀은 안그럼 ㅇㅇ
위의 생각을 얼핏 보면 그럼 풀을 안 좋아하는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다이어트에 관심도 없는데 풀을 먹고 싶어서 굳이 파리바게트에서 샐러드도 사 먹는 걸 돌이켜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아 그럼 둘 다 좋아하는 거지 뭐~" 가 되겠지만, 그래도 본인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찾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사람의 감정을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누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하나만 있을 때의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진지함)
그러다가 문득 좋아한다는 영어 표현이 떠올랐다.
사실 love와 like 모두 정도의 차이일 뿐, 좋아한다는 뜻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love와 like를 동일시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love는 사랑한다. like는 좋아한다로 사용해야 겠다.
아 왜 이걸 이제 생각했지?
나는 풀을 좋아하지만,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이거다!
왜 갑자기 이과 컴퓨터충이 이런 고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들의 어휘가 발전해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나 감정을 좀 더 세밀하게 나타내보고자, 곰곰이 생각해보며 두 표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좋아한다"라는 것은 그 대상이 없어지거나 취하지 않아도 참을 수 있지만, "사랑한다"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게 아닐까.
내 경험이나 가족, 연인, 이것저것들에 반추해 보았을 때 대충 들어맞는 것 같다.
내가 야채가 없는 만두는 참을 수 있지만 고기가 없는 만두는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와 "좋아한다"의 차이는 "인내"의 유무가 아닐까.
크 감성 오졋따
요즘 일찍 자니까 새벽 감성이 낮에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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